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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이어지는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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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3-12-20 09:45 조회5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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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움과 만족은 다른 차원에 속하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즐거움은 긍정적인 감정에 속하면서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정다운 친구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할 때, 멀리 떨어져 살고있는 아들이나 딸로부터 문안 전화를 받았을 때, 흔치않은 명절음식을 먹을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등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삶의 표현으로부터 얻어 질 수 있는 감정이지만, 그 효과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에 불우이웃 돕기에 참여할 때, 사회정의를 위한 걷기에 동참할 때, 땀 흘리면서 가꾼 밭으로부터의 소출을 주변 친구들과 나눌 때, 병원에 입원한 친지를 방문 위로하고 돌아 올 때 등으로부터 갖게되는 감정은 즐거움이라고 하기보다는 만족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때 만족을 감정의 차원에 넣기보다는 자신의 장점과 덕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족에는 즐거움이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불우이웃 돕기에 참여한다는 것은 가외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고, 사회정의를 위한 걷기에 동참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땀 흘리는 것 자체를 즐거움으로 보기는 어렵고, 병원에 찾아가는 시간과 노력 역시 즐거움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즐거움이 따르는 만족도 있겠지만, 즐거움은 별로 없으면서도 만족할 수 있는 경우도 있게된다. 즐거움 여부를 따지면서 만족한 결과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 다른 면으로 본다면, 즐거움이란 일과성인 특징을 갖고있는 반면에, 만족이란 흐뭇하고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떤 감정으로 채워지기 이전에 시간을 초월한 경지에 들어가면서 더 나아가 어떤 흐름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즐거움도 행복의 요건에 들어갈 수 있지만, 만족이 따르는 즐거움일 때 이로부터 얻게되는 감정이 행복에 더 가까울 것이다. 즐거움과 만족에 더하여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면서 어떤 목표를 찾을 수 있다면, 이로부터 얻게되는 행복은 그 무게가 더 해갈 것이다. 
     이때 옳지 않은 일에 몰두하면서 얻을 수 있는 만족은 온전히 행복으로 이어지기 어렵게 된다. 예를 든다면, 도박에 몰두하면서 돈을 따게 된 만족에 행복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탈(crystal)을 수집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침식사가 끝난 다음부터 새로 얻은 크리스탈의 모양과 구조에 대하여 현미경을 통한 관찰에 몰두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크리스탈의 내부구조에 대하여 더 이상 깨끗하게 볼 수가 없었다. 해가 구름에 가려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하늘을 쳐다보니 날이 저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새로 얻은 크리스탈의 내부구조를 들여다보는 동안 시간이 정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즐거운 인생이 될 것인지 아니면, 보람있는 인생으로 꾸며 갈 것인지는 온전히 다른 두 가지의 인생길이라고 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을 소유할 때의 즐거움은 그대로 만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반면에, 세상의 온갖 것들을 다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행복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만족의 구조 : 즐거움은 그대로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만족의 구조와 내용은 어떠한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게된다 : 주어진 과제에 대한 도전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집중해야 한다. 분명한 목표가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 거의 즉각적인 되먹임(feedback)이 있게된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깊숙한 열중이 있다. 통제의 느낌이 있다. 스스로의 소멸감(self vanish)이 있다. 시간이 정지한다.
     그 중에 없는 것들이 있다. 긍정적인 감정이 반듯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즐거움이 있었음을 알게된다. 사실 특별한 감정도 없이 의식하지 않으면서 한 곳의 흐름에 빠지면서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은 만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그대로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즐거움뿐이라면, 남는 것이 없게된다. 오히려 쓰면서 즐기게 된다. 미래를 위한 특별한 투자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만족에는 미래를 내어다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최소한 심리적으로 더 풍부함을 갖게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도 있으며, 자신만 알고 갖게되는 소중한 재산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에 만족보다는 즐거움을 찾게된다.
미래를 위한 투자로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는 학생이 있다면, 공원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는 학생의 숫자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보면 어떤 선택이 보다 나은 처지와 입장을 초래하게 될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40년을 뒤돌아 볼 때, 평균적인 사람들은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40년 전에 비하여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이 10배나 더 늘어났고, 당시에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의 평균 나이가 29.5세였던 반면에, 현재는 그 나이가 14.5세로 낮아졌다. 이는 상대적인 역설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구매력, 교육정도, 모든 편리한 장치 및 영양상태와 같은 객관적인 잣대는 개선된 반면, 우울증을 비롯한 주관적인 행복의 잣대는 오히려 다른 방향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전하여 대인관계가 소홀해지는 대신에 여러 가지의 어린이 또는 성인 장난감들이 극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삶을 통한 만족보다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즐거움에 더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 TV 및 인터넷 게임, 약물 중독, 샤핑, 사랑 없는 섹스, 각종 맛 위주의 가공식품들이 넘쳐흐르는 현 시대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생활상인 것이다. 이런 현대인들이 방향감각을 잃고, 감각주의에 몰두하면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숲 속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 될 것이다.

     만족을 얻는 길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기술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한 실패를 각오하고 도전에 임할 수 있는 강력한 의지와 함께 힘도 있어야 한다.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좋은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지평선을 넓혀가야 한다. 또한 좋은 제목을 선택해야 함도 물론이다.

     인생은 3막의 연극으로 되어 있다. 1막과 2막에서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고 3막이 끝나보아야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연극의 제목도 스스로 결정하고, 이에 맞는 대본도 스스로 써야 하며, 연출과 주연도 도맡아서 하는 인생 3막 극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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