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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

낙관주의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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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3-12-24 03:30 조회5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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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 전과 비교할 때 우울증 환자수가 10배나 늘어나 마치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여자들과 젊은이들에가 가장 심하게 번지고 있는 중이다. 더 나아가 앞으로 우울증이라는 전염병이 덜 심해질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오늘날 살고있는 우리들과 50년 전 사람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자신은 커지면서 공동은 작아지는 현상과 일치하고 있다(waxing the self and waning the common).

커진 자아(waxing self) :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는 자신을 최고로 올려놓은 바 있다. 각 개인에게 주는 기쁨과 아픔 또는 성공과 실패로부터 오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 것이다. 사회나 현대의 경제가 개인에게 준 자아의 크기를 극대화시켜주었다. 이로부터 오게된 자신의 생각과 평가는 전 세대 사람들로부터는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스스로 개척할 수밖에는 없게된 것이다. 그 결과 무기력증이 부산물로 따라오게 된 것이다.

     20세기초에 생기게 된 대량생산 방식으로 조립 라인을 통한 제품구매에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모든 제품은 다 똑 같았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생긴 트랜지스터와 초보적인 기계지능으로 인한 제품의 다양화가 이루지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다음에는 더 발전한 기계지능으로 제품의 다양화가 극대화를 이루게 되었다. 광고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었고 대부분의 광고내용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개인의 자아를 더 크게 만들어주게 된다. 대량생산으로 발생하게 된 부의 분포로 개인의 구매력이 늘어남과 동시에 발생하게 된 현상인 것이다. 
     여기서 개인의 자아의식은 최고도로 발달하게 된다. 20세기 이전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 세상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많은 먹을거리, 읽을거리, 옷가지, 자동차, 비행기, CD, 컴퓨터, 직장 또는 집을 갖게된 결과 모두가 부를 맛보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 하여 미국 교육은 학생들의 자부심(self esteem)을 한껏 높여주게 된다. 현대인들은 이제 거의 모든 것들이 자신의 손끝에 놓여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아가 오늘날처럼 커져 보인 적은 없다. 아무리 잘 나아가던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내세우면서 극대화된 자아를 내세워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부의 축적과 함께 기계화된 현대생활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아주 커지게 된 자아를 안고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작아진 공동(waning common) : 인간은 의미를 찾았을 때 강해지고 희망을 갖게되었을 때 견디어 낼 수 있게된다. 
     우리는 어떤 문맥(context)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다. 큰 가족이 있었고, 한 동네가 있었고, 오래된 전통과 살아가는 문화를 갖고있었을 뿐 아니라 여기에 종교까지 갖고 있었다. 
     살다가 어려운 일이나 실패를 하게되면 돌아갈 곳이 있었고, 위로를 해줄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보다 더 큰 공동체가 있었고, 큰 목표와 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가족, 국가와 종교의 테두리 안에 살고있으면서 자신을 초월할 줄 알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세상은 좁아지면서 동시에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알아내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이제 지구촌이라는 표현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친밀감이 더 생기기는 하지만,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된 바 있다.
     지혜보다는 지식이 앞서는 세상이 되어버렸고, 대가를 나중에 얻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맛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이 걱정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일의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일의 희망은 오늘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준다. 희망이 사라진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은 비관적인 사고방식과 이의 확대된 현상인 우울증으로 나타날 수밖에는 없게된 것이다.

     커지는 자아만으로 또는 작아진 공동만으로도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커지는 자아와 작아진 공동을 동시에 맞게되면 우울증으로 발전하기 아주 쉬운 상태에 놓여있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 생활의 복잡성은 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쉬워진다. 
     무기력, 비관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어려운 일이 찾아오게 될 때, 우울증으로 빠지기 쉽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균형 잡기 : 커진 자아와 작아진 공동으로 인한 문제점들을 풀어가려면, 이 둘 사이에 새로운 균형을 잡아주어야 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자아란 커진 자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커진 자아가 제대로 된 것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현대 사회와 교육은 사람들의 자아를 크게 만들어 준 바 있다. 그 결과 개인주의가 발달하게 되었고, 각 개인은 자기자신의 영역을 원하면서 새롭게 얻은 영역을 지키고 싶어한다. 이로부터 오는 부담감과 함께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의미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즉 커진 자아, 개인주의, 자신만의 영역은 얻게되었지만, 이를 지켜야 하는 부담감으로부터 얻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다. 즉 무의미함의 연속과 함께 새롭게 얻게된 부담감은 필연적으로 우울증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게된 것이다. 
     자아는 커지면서 공동은 작아진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풀어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공동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의존할 곳이 있었고, 자아와 지켜야 할 자신의 영역은 최소한이었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겪어야 할 부담감 역시 최소한이었다. 여기에 공동으로부터 주어지는 삶의 의미에 대하여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편안한 생활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이와 같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스스로 깨달은 후에 자기에게 맡는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낙관적인 사고방식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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